Thursday, December 09, 2004

노대통령의 눈물

아르빌을 방문한 후 돌아오는 짚차 안에서 대통령이 눈을 훔쳤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노대통령은 자신은 실리와 명분 중에 명분을 따라 왔다고 했다. 또한 이 결정도 명분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마디의 말은 이 세상에는 하나의 가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치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자신의 명분은 여러 가치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노대통령이 실리를 챙기기 위해 명분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인정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열한 번째 잘 사는 나라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우리가 열한 번째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정말 기적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열한 번째 잘 사는 나라다. 제일 잘 사는 나라부터 셈해 나온다면 우리는 열 손가락 밖에 있는 작은 나라다. 우리는 중국과 미국처럼 광활한 대륙에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명분과 실리,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이런 단순한 질문이 복잡한 상황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주기는 힘들다. 이것이 현실이고 우리가 받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쟁이 침략전쟁이고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극단적인 판단이다. 그들의 가치의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시장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공격받았다. 3000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행한 일은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을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힘을 길러서 옳지 않다고 말하며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희생시켜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궁극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러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한 공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라크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이렇게 해야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옳고 그름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 일에 우리는 군대를 보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 판단해야 했던 괴로움과 그 판단의 결과로 고향을 떠나 삭막한 외국에 와 있는 젊은이들을 직접 대면하여 느꼈던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기에 그 눈물이 흘렀다고 생각한다. 조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보내어진 우리 청년들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아직 열 손가락 안에 못드는 나라다. 우리는 지난 고구려 멸망 이후 중국이라는 수퍼파워와 접경하며 생존하기 위하여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고, 수퍼파워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또한 고민을 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눈물,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겪어온 세월 속에서 항상 부딪쳐 온 무게가 실려있다.

Thursday, December 02, 2004

Code is My Joy!

Code is My Joy!
It does not cheat you.
You couldn't cheat it.
It's a kind of the art.

No codes lie,
but people do.
Codes work,
but sometimes people do not.

Code is My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