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20, 2006

Thursday, August 17, 2006

I'm a Fon user.

They sent me an Wifi AP WRT54G, which modded by Fon Firmware.

It says today,
>> Hi Ryu,!
>> You are the # 46593 member of the FON Community, and you're linus

It redirects to FON authentification web page when I connect to Internet vi this AP.
I typed some information about my AP, and it made me free to surf the web.

I hope I would enjoy Wi-Fi around the world, including Capital Hotel in Bejing and Grand Palace Hotel in Tokyo.
aa

Wednesday, August 16, 2006

후쿠자와 유기치

어제 밤에는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서 글들을 읽으며, 그들이 왜 조선을 침략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탈아론은 정한론과는 다른 생각에서 연유되었다. 정한론은 명치유신을 인정하지 않는 조선을 혼내주고, 새로 재편된 일본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전을 위한 길러진 무력을 바깥으로 내보내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탈아론은 서양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 일본의 독립을 지키고 제국주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조선과 청나라와 질적으로 다르게 먼저 개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조선과 청과의 관계는 이것을 위해서 희생해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후쿠자와 유기치와 같은 사람이 왜 없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때 우리가 왜 일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갔는지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중앙집권적 조선왕조 체제 아래에서 새로운 실험이 없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일본은 번 별로 내전을 계속해 왔고, 천황파와 막부파가 마지막 결전을 마치고 통일된 일본을 다시 이루게 되었다. 우리도 평화시기가 아니라 내전으로 무력을 강화시키고자 했다면 군대를 통한 힘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우리에게 평화가 너무 길었다.

두 번째는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국제화의 문제이다. 일본은 좋건 싫건 내왕하는 서양인들과 교류를 했었지만 우리는 지리적으로 불리한 점에 있었고, 중국 중심의 사고가 너무 굳어져 있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지금은 세계 각국에 우리 민족이 나아가 삶을 터전을 일구고 있다. 가장 발전한 나라에서부터 가장 빈국까지 흩어져 있다. 세계화가 된 지금에는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 바로 전달이 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되었다. 국제 교류는 그 때에도 꼭 필요한 요소였다. 정체하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살 수 있다.

백년이 더 지난 오늘에 그 때의 모습이 꼭 어제의 일과 같이 느껴진다.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 하지말고 그 때의 잘못을 계속 찾아내 오늘에 투영해 보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는것이 필요하다.

Monday, August 14, 2006

여름 휴가

여름 휴가로 지난 목/금/토 단양에 다녀왔다.
우리 세 식구만 갔다 왔는데, 더위의 절정을 피해서 다녀왔다 좋아했었다. 그런데, 돌아온 후의 더위도 장난이 아니다. 입추, 말복 다 지났는데 아직도 밤에 땀을 흘리며 자야 했다.

첫째날에는 고수동굴을 구경했다. 둘째 날에는 단양 대명 콘도의 아쿠아월드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세째날에는 충주호에 있는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탔고 돌아왔다.

모처럼 한가한 몇 일을 보냈다.

나는 윤건차의 한국 현대 사상의 흐름이라는 책을 가져가서 보았는데, 80년대 이후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식인들의 사회는 현실 정치와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는데, 자신들도 노동자 계급과 동떨어질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쳐서 노동자 농민이 주도가 되는 변혁은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않은 도시 근로자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더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Tuesday, August 08, 2006

Zhang Xueliang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Zhang Xueliang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장학량은 국공 합작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분단의 시대에 김일성과 이승만 사이에 서서 장학량처럼 합작을 추진하여 한국전쟁을 막아낼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끝까지 중립을 지키며 100살까지 살면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죽었다. 신념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