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9, 2007

한국과 일본

21세기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제 낮에 지난 주 푸켓에 가기 전에 주문한 '만주철도의 두뇌집단'을 조금 읽고, 저녁에 우장춘 박사의 부친인 우범선의 명성황후 시해와 고영근의 우범선의 암살의 이야기를 읽었다. 새로운 사색 거리가 떠 올랐다.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고대사를 되집어 볼 때 현존하는 민족들 중에 우리 민족과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가 바로 일본이고 20세기에는 민족의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식민지의 2류 국민으로 대했고, 급기야 전쟁과 분단을 가져오게 했다. 그래서 미운 일본, 그러나 우리와 일본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오늘은 이영훈 교수가 일제 식민지 경제사를 재조명한 글로 신문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이제 한일합방 100주년을 곧 맞게 된다. 우리도 이제 일본에 대한 우리의 위치를 정상화해야 할 때가 다가 오는 것 같다. 분명 한일합방은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비극을 딛고 일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이 견원 지간이었지만 현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묶어지고 있다. 일본이 패권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대동아 공영을 외친 때가 있었다. 그 방법에 있어서는 큰 과오를 범했다 하더라고 그 의제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민족과 국경을 넘어서 사람들이 공존하던 중앙집권적 국가 시대 이전에 사람들에게 더 큰 자유가 있었던 사회환경으로 돌아가서 서로 구분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고 돕고 사랑하자.

생각해 보는 것은 삼일운동 독립선언서를 재해석해 보는 것이다. 그 만세운동은 일본을 영원한 적, 멸절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지 않았다. 만세운동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진정한 동질화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근거 아래 우리를 스스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교시절 독립선언서를 공부하면서 왜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약하고 젊잖게 독립을 선언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독립선언서이면 전쟁에 나아가는 선전포고처럼 목숨을 걸고 너를 멸절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해방 후 반일 교육을 강화해서 받은 우리는 어쩌면 식민지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더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립선언의 결의가 얼마나 약했던지 그 글을 쓴 최남선마저도 종국에는 일본의 통치에 협력하지 않았던가?

일본의 본심을 계속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정치가들의 본심, 일반인들의 본심, 침략자들의 본심… 그들은 매년 공주와 부여를 방문한다.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건 아니건 계속 그들의 뿌리를 찾아 이 땅에 온다. 그들의 본심은 백제의 고도를 방문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아직도 기억하며 감격스러워 한다. 그것에서도 그들의 본심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 함께 잘 살아 보는 일, 그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게 아직도 노력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백제가 대화에 문명을 전해 주었듯이, 대화가 백제의 멸망에 군대를 보내 당나라로부터 지켜내려고 했듯이, 후쿠자와 유기치가 동아시아를 계몽하기 위해 마음을 먹었듯이, 우리가 일본의 정신과 일본의 훌륭한 인격을 갖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과 같이, 선의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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